"QE 도입 고민" 언급한 한은…RP매입·통안증권 활용 늘린다
서학개미·비은행권 부상…유동성 흡수보다 공급 필요성 증대
"통화정책 기존 틀 유지하되 RP매입 확충 등으로 발전 강구"
- 김혜지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줄어드는데 국민들의 해외 주식 투자는 늘어나고…앞으론 유동성 '흡수'가 아니라 '공급' 수단을 확충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행이 이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보고서를 공개했다. 최근 경제 여건 변화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할 필요성이 줄고, 비은행권 급성장에 따라 기존의 통화정책 파급 경로가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현 통화정책 운영 수단의 유효성과 활용도를 점검해 점차 개선·조정해 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은은 30일 금융시장국 시장운영팀 소속 우한솔 과장이 작성한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영 :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BOK 이슈노트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한은의 통화정책은 다양한 금융·경제 여건 변화와 직면했다. 특히 경제가 성장하며 본원통화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국외로부터 들어오는 유동성은 정체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변화로 꼽힌다.
예컨대 2016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 폭은 추세적으로 감소했고, 거주자의 해외 증권 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급증했다. 그 결과 국외 부문을 통한 시중 유동성, 즉 지급 준비금 공급의 증가세는 둔화했다. 자연스레 한은이 시중 유동성을 흡수할 때 주로 썼던 수단인 통화안정증권(통안증권) 발행 잔액은 빠르게 줄었다.
비은행 금융기관의 급성장 역시 한은의 통화정책 파급 양상을 바꾸는 중요한 여건 변화로 작용했다. 지난 2010년 이후 비은행 금융기관의 총자산은 연평균 8.5%(은행권 4.8%) 급증해 2023년 말 전체 금융권 총자산의 59.5%를 차지했다.
비은행권의 발돋움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은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디지털 금융 발전으로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가능성이 한층 확대됐다. 향후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비롯한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이 활성화되면 지급준비금 수요의 불확실성은 더욱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 과장은 "한은은 이런 여건 변화에 대응해 그동안 통화정책의 파급 경로와 시장 기능의 원활한 작동에 기여해 온 금리 상하한 체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제도 개선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주요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중 유동성을 적극 공급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인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를 도입해 위기에 대응했다. 그런데 이 수단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기존의 통화정책 운영 시스템인 '금리 상하한 체계'는 유지할 수 없었다. 지급 준비금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기에 단기 시장 금리의 안정을 위해선 금리 바닥을 정해두는 '금리 하한 체계' 전환이 불가피했다.
반면 한은은 제로금리와 QE 없이 전통 수단인 기준금리 조정(인하)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다. 이에 미국·유럽 등과 달리 금리 상하한 체계의 큰 틀을 유지했다. 물론 2022년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우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금융 불안 확산을 계기로 한은도 대출 제도와 공개시장 운영 제도를 정비하며 운영 체계를 일부 보완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통화정책 체계를 보다 본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한국금융학회와 공동 개최한 정책 심포지엄에서 한국 경제의 저출산·저성장 기조를 지적한 뒤 "이제는 일시적인 보완을 넘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여건의 중장기 구조 변화를 고려해 통화정책 운영체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근본적인 고민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금리 하한 체계로의 전환보다는 기존의 금리 상하한 체계를 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우 과장은 "한은의 금리 상하한 체계는 금리 하한 체계에 내포된 단기 금융 시장 위축 등의 어려움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금리 하한 체계의 장점으로 언급되는 요소가 포함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며 "앞으로 한은은 현행 상하한 체계에서 점검·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중장기 시계에서 개선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통화정책 운용 목표의 의미를 지닌 콜금리의 유효성을 점검할 예정이다. 동시에 공개 시장 운영에 있어 한국 무위험지표금리(KOFR)의 효용성, 통화정책 파급 경로 상의 유효성을 검토하겠다고 예고했다.
유동성 공급 수단은 늘릴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 탄력적 유동성 공급으로 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장기 RP매입 제도(기조적 유동성 공급), 대기성 RP매입 제도(금융 불안 시 신속한 유동성 공급) 등 추가 유동성 공급 수단의 확충 필요성을 검토하기로 했다.
유동성 흡수 수단으로 주로 쓰였던 통안증권의 역할은 다시 살필 계획이다. 기존 목적보다 유동성과 안정성이 높은 무위험 채권이라는 특성을 살려, 중앙은행 부채 관리 차원에서 보다 발전된 활용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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