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앞서고 中 추월하는데…K-반도체 '슈퍼 인재' 태부족 난감
작년 천명 쓸어간 SK하닉…외국인 경력직 선제 채용 나선 삼성전자
中, 2년 만에 K-반도체 기술력 추월…"정부, AI 산업 육성 지원 절실"
-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국내 인공지능(AI)·반도체 업계의 '인재 영입' 전쟁이 불붙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000명을 웃도는 신입·경력직을 빨아들이더니,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연구개발(R&D) 분야 외국인 경력직 채용에 나서면서 '고급 인재' 선점에 분투하는 모습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005930)·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S·삼성SDI 등 10개 계열사는 지난 24일부터 R&D 분야 외국인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 중이다. 국내 상주 외국인 경력직 채용은 네 번째로, 참여 계열사는 2023년 도입 당시 3곳(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SDI)에서 10곳으로 늘었다.
지원 자격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 3급 이상을 보유하면 된다. 학사 취득 후 2년 이상 경력을 쌓았거나, 석·박사 학위 소지자는 우대를 받는다. 예컨대 반도체(DS) 전문성이 있거나 석·박사 수준의 기술 인재라면 최소한의 요건만 통과하더라도 채용의 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000660)는 지난해 역대급 채용에 나서며 인재를 수혈했다. 지난 한 해에만 신입 직원은 700여 명, 경력직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 인재를 쓸어갔다. 삼성전자가 2월부터 상반기 경력 채용에 나선 점도 더 우월한 인재를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가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인력 태부족' 때문이다. AI 산업이 황금기를 맞으면서 고대역폭메모리(HMB) 시장이 급성장했지만, 인력은 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다는 게 업계 공통의 목소리다. 특히 고도의 기술 혁신을 이끌 '슈퍼 인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과 중국이 'AI 양강 체제'를 구축하면서 고급 인재들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는 현실도 국내 업계의 발을 분주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지난 23일 발간한 '3대 게임체인저 분야 기술수준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반도체 기술 수준이 2년 만에 중국에 대부분 추월당했다는 전문가 설문 결과가 나왔다.
최고 기술 선도국을 100%로 봤을 때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 기술 분야'는 한국이 90.9%(3위)로 중국 94.1%(2위)에 밀렸고, '고성능·저전력 AI 반도체 기술'도 한국은 84.1%(3위)로 중국 88.3%(2위)보다 낮았다. '전력반도체 기술'도 한국은 67.5%(6위), 중국이 79.8%(4위)였으며 '차세대 고성능 센싱기술'도 한국은 81.3%(5위), 중국이 83.9%(4위)였다.
중국은 미국의 고강도 무역장벽에도 독자적 AI·반도체 역량을 키우며 경쟁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은 2023년 세계 최고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가 학술논문의 수와 영향력을 조사한 '더 네이처 인덱스'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2년 연속 미국을 앞서고 있다.
인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시카고대 싱크탱크의 '글로벌 AI 인재 추적'에 따르면 세계 상위 20% 수준의 탑티어 AI 연구자 중 중국 출신은 2019년 29%에서 2022년 47%로 대폭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은 20%에서 18% 줄었다. 한국은 2019년과 2022년 모두 2% 남짓이었다.
산학계에선 중국이 미국의 견제에도 단기간에 'AI 인재 요람'으로 성장한 배경엔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과학굴기 선언 이후 첨단 산업 인재 육성과 영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쏟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고급 인재 풀'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국내 전산학 박사 1호'인 문송천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한국의 '소프트웨어 홀대주의'가 인재 빈곤을 키웠다고 진단했다. 정부와 기업이 소프트웨어 투자와 개발에 소홀했기 때문에 인재를 육성할 토양이 만들어지지 않았고, 첨단 기술의 결정체인 AI 반도체 주도권이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올해 AI 관련 예산은 1조 8000억 원으로 전체 정부 재정 673조 3000억 원의 0.27%에 불과하다. 문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소프트웨어 산업 지원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기업들의 역량이라면 단기간에 앞서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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