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신 못 볼까 봐"…李 대통령 집무실 재이전 예고에 청와대 150m 줄
'청와대 막차' 전국 곳곳서 몰려든 인파…외국인 관광객도 '북적'
"2주 전 예약하고 부산서 올라와"…재이전엔 대체로 '긍정 평가'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다신 청와대 못 볼까 봐 2주 전에 예약해서 경남 양산시에서 올라왔지요."
현충일 연휴 이튿날인 7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청와대는 가족들과 나들이를 온 사람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청와대 정문부터 선 줄은 입장 시각이 가까워질수록 200여명의 인파와 함께 150m쯤 떨어진 대통령비서실 여민관까지 늘어섰다.
7일 청와대재단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달 주말의 청와대 관람 예약은 모두 마감됐다. 청와대는 하루 2만 2000명씩 4주 분량의 방문 예약을 받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곧 집무실을 용산에서 청와대로 옮기겠다고 밝히면서 예약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청와대 정문이 위치한 청와대로에서 효자동 삼거리로 향하는 길은 차들로 꽉 정체된 상태였다. '청와대' '청와대+창덕궁 당일'이라 적힌 45인승 관광버스들이 청와대 인근 도로 곳곳에서 관광객들을 내려주기도 했다. 청와대 정문에 다다른 시민들은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이게 다 들어가는 줄인 거야"하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28도에 육박하는 여름 날씨에 시민들은 양산에 선글라스까지 중무장한 채 땀 흘리며 입장을 기다렸다. 긴 줄 옆으로는 시민들이 청와대 본관을 배경으로 브이, 손하트 등 다양한 포즈를 하고 '인증 샷'을 찍었다.
현충일 연휴 기간을 맞아 최소 2주 전부터 사전 예약을 하고 전국 곳곳에서 청와대 관람을 하러 온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이 대통령이 청와대로 집무실을 재이전하면 관람이 중단될 것으로 보고 "생애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아서 왔다"고 방문 계기를 밝혔다.
청와대 방문을 위해 경남 양산시에서 아내, 아들 2명과 함께 올라왔다고 밝힌 곽태호 씨(44·남)는 "2주 전에 사전 예약을 했다"며 "대통령 선거한다고 하니까, 이 대통령이 혹시나 당선되면 여기로 들어올 거라고 예상하고 이제 더 이상 청와대를 못 볼까 봐 온 것"이라고 말했다.
곽태호 씨의 아들 승화 군(14·남)은 "안에 들어가서 보니 아주 화려했고, 대통령이 사는 집이라 그런지 신기하고 새로운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날 미리 부산에서 상경한 손정현 씨(32·남)는 "내년쯤이면 청와대를 못 볼 것 같아서 올해까지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다"며 "이렇게 국민들이 좋아하고 예쁜 곳을 굳이 놔두고 왜 용산으로 갔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웃었다.
시민들은 청와대 재이전 소식에 대체로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부산 출신이라 밝힌 이지혜 씨(31·여)는 이날 청와대를 관람하고 나와 "보안만 다시 제대로 딱 점검하고, 원래 역사와 전통이 있던 청와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겨야 한다"며 "당연히 여기로 오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어머니와 동생, 남편 등과 함께 청와대를 관람한 노은주 씨(48·여)는 "남편이 사전 예약을 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고 단정하고 검소한 느낌이었다"며 "청와대가 공간도 넓고 상징성도 있지 않냐. 굳이 이렇게 좋은 환경이 있는데, 도청도 될 수 있는 그런 공간(용산 대통령실)에서 집무실을 써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곽태호 씨도 "이곳이 옛날부터 대통령이 업무를 봤던 곳이고, 상징성도 있지 않냐"며 "용산으로 왜 집무실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로 다시 오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고 청와대를 찾아 발길을 돌리거나, 만 65세 이상의 가족 구성원만 들여보내고 정문에서 기다리는 이들도 많았다. 현장 입장 등록을 할 수 있는 종합 안내소에선 만 65세 이상, 국가 유공자, 외국인, 장애인만 현장 등록 대상이란 안내가 이어졌다.
종합안내소에서 현장 등록이 안 된단 안내를 받은 김민하 씨(27·여)는 "현장에서 예약이 조금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그냥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렀는데 결국 못 들어갔다"며 "방금 휴대전화 켜서 확인해 보니 평일엔 아직 예약할 수 있는 날들이 남아있어서 반차 내서 평일에 다시 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대통령 집무실이란 게 국가 보안을 위해 엄밀하게 유지돼야 하는 곳이긴 하지만, 급하게 집무실을 차렸던 용산보다는 청와대가 대통령이 국정운영 하기에 더 최적화된 곳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리고 어차피 청와대 내부 보안 시설은 아직도 개방이 안 된 상태라는 뉴스를 봤는데, 그냥 조금만 더 보수해서 이 대통령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김 모 씨(39·여)는 이날 청와대 정문 앞에서 쭈그려 앉아, 관람 중인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씨는 "저희는 부산에서 에버랜드 갔다가 서울로 잠시 놀러 왔는데, 할머니만 안에 들어가셔서 보고 계신다"며 "저희는 예약을 못해서 밖에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웃었다.
청와대 재이전 소식에 인근 자영업자들도 때아닌 특수를 경험하고 있다. 청와대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50대 박 모 씨는 "오늘 사람이 너무 많아서 얼음이 다 소진돼 지금 아이스 음료가 안 된다고 안내해 드리고 있다"며 "오후 4시까지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평일에도 사람이 꽉꽉 들이차는 정도"라고 했다.
한편 청와대에선 지난 4일부터 경내 탐방로 전면 보수·정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사 구간은 칠궁 뒷길에서 시작해 춘추관 옆길로 이어지는 1.31㎞ 전역으로, 청와대 본관 및 영빈관 등의 시설은 관람이 가능하다. 재단은 대통령 집무실 복귀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전과 같이 4주 후까지 관람 예약을 받는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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